- 요즘 들어 말이예요, 부쩍. 어떤게 진짜 직업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게이트의 보안 검색대를 지나며 그가 말한다.
조합에서는 1년 선배이지만, 뒤늦게 이 곳으로 파견이 된 탓에 회사 안에서는 3년 후배인 그다.
게이트를 나와서까지 존댓말이라니. 하긴 이 편이 익숙하긴 하다.
- 무슨 소릴... 알잖아, 투잡 허용 안되는 직업인거.
- 두 직업 중 하나는 꼭 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죠.
- 그럼 그런가보지.
- 어떤 쪽이요?
- 니 마음대로 하세요.
미간을 찡그린 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귀엽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성행 셔틀에 오른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끈질기게도 그가 다시 묻는다.
- 둘 중 하나가 꿈이라면, 그럼... 지금은?
- 뭐?
- 이도 저도 아닌 지금 말이예요.
- 지금? 나한테 존댓말을 쓰고 있는 걸 봐선 이도 저도 아닌게 아니라 이쪽인거 같은데... 오늘, 말 많네 참.
- 만약에 이게 꿈이면, 근데 지금 자면서 꿈을 꾸게 되면 그건...
그를 외면한 채 좌석을 뒤로 젖히고,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잠 그리고 꿈은 일의 연장이다. 목적지인 화성까지 가는 13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동안.
체력을 비축하기는 물론이거니와, 그곳에서 벌어진 혹은 벌어질 일을 꿈 속에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꿈 속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저쪽 일이라는게, 그렇다.
자신을 신의 대리인으로 자처하는 예술가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있어왔다.
자신의 글, 그림, 음악이 사실은 신의 메시지를 받아 옮긴 것이라고.
화성의 노인도 그 중 하나였다.
엄격한 수도사 시절을 거쳐, 촉망 받는 사제가 된 그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이순에 접어들 무렵인 14년 전이었다.
스스로를 '붉은 사제(il Prete Rosso)' - 그의 어디가 붉은지는 모르겠지만 - 라고 칭한 그는, 자신이 우주의 신호를 모으는, 살아있는 안테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신호를 실체화한 것이 그 "작품"이라고 했다.
헌데 그 "작품" 들이란, 하나같이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현대 미술들이 일반인의 눈으로는 미적가치를 논하기가 쉽지 않기는 하지만, 노인의 작품에는 그 이상의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장로회는, 사제 활동을 등한시한 채로 계속되는 그의 작품활동을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그를 파문했지만, 노인은 그 후에도 계속 작품을 만들었다.
마침내 장로회는 그것을, 이단이라고 할 가치조차 없는, 늙은이의 망령이라며 관심을 끊어버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제 아침, 화성에 돌연 나타난 거대한 구조물은 장로회를 아연실색케 했다.
누가봐도 다른 노인의 "작품"들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크기란.
하지만 정작 노인은 그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 온 것은 이것을 본딴 것에 불과했고,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만들어왔던 것의 실체, 바로 우주의 신호 그 자체라고 했다.
- 선배, 선배!
그가 흔들어 깨운다.
- ...음? 왜?
- 무슨 꿈을 꾼거예요.
- 뭐?
- 선배 지금 울어요.
툭. 툭툭. 눈물이 떨어진다.
그가 건네는 손수건을 무시한 채,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소매가 축축하다.
어떤 꿈이었을까.
그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된, 아득히도 먼 우주의 기억이다.
화성에 나타난 구조물에만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노인이 말한 것 처럼, 그것은 단지 '신호'일 뿐이다.
애초에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 노인 - 붉은 사제.
평생을 그렇게 혼자 살아온 노인의 우주적인...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어 옆에 앉은 그의 손을 꼭 잡으려 애쓴다.
...
어디간거지?
- 아가씨, 아가씨!
- ...음? 왜?
- 다 왔어요 화성, 종점!
눈을 뜬다.
버스기사 아저씨다.
- ... 아시발쿰 (주1.)...
- 뭐라고?
- 아, 아녜욧!!!
황망히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은 왜 이리도 찬건지, 지구온난화는 개뿔.
우주적인 외로움이 저 가슴 속부터 쌔리 밀려오는구나.
침으로 범벅된 소매가 축축하다.
주1. 아시발쿰, Archie Val-koom :
몽마(夢魔)의 한 형태로, 간혹 이를 incubus, succubus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보다 오래되고 강력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형태와 가까운 incubus나 succubus와는 다르게, 아시발쿰은 사람은 물론 사물이나 혹은 특정 현상 자체로서 나타난다.
꿈 속에서 이를 겪은 사람은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고 전해진다.
200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