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철옹성과 같았다.
천연의 요새인 험난한 산맥. 그리고 그것을 둥지 삼아 살고 있는 한 마리의 용.
그리고 드라군(Dragoon, Dragoner, 龍騎兵)이 있었다.

드라군은 엄격한 선발과정, 그리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통해 양성된다.
훈련과정은, 용의 둥지에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용의 둥지에서 "용의 심장"(Dragonheart, Drache-Herz)을 가져오는 것이 견습 드라군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다.

"용의 심장"은 실제 용의 심장은 아니며, 용의 배설물에 포함된 단단한 유기물로.
이것을 먹은 드라군은 용과 같은 용맹함을 갖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내가 용의 심장을 먹었던 것은 3년 전으로,
먹고 난 후 꼬박 일주일 동안을 앓아누웠으며, 그 후로도 몇 달 동안은 몸이 제 몸이 아닌 양 무거웠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몸은 놀랄만치 가벼워졌고, 근력도 강해졌다.
무엇보다 용기와 자신감이 샘솟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과 싸우면 싸울수록 사내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내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기억, 드라군이 되기까지의 기억.
자신이 지난 번 싸움에서 죽인 적의 얼굴.
마침내는 자신이 기억을 잊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다.

다만 사내는 용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용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 용처럼 강해진다.
-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상대를 죽여야한다.
- 그리고 마침내 용이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싸움.

적장은 강했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 가장 강했다.
저 상대의 목을 벤다면, 용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말을 달렸다. 사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수를 보았다.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러나 비수는 마치 눈이 달리기라도 한 것 처럼 사내를 따라오더니 이내 사내의 가슴팍 깊히 박혔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용에 가까워진 탓이리라.
말을 달려, 적장의 목을 베었다.

사내는 멈추지 않고 말을 계속 달렸다.
자신이 그리워한 그 곳, 자신이 드라군으로 다시 태어났던 그 곳 - 국경에 있는 용의 둥지를 향해 달렸다.

고향에 온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사내는 입고 입던 갑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인간의 껍질을 벗고 자신의 본 모습인 용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느꼈다.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가 흘렀다. 물론 고통은 없었다.
사내가 인간의 눈을 통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용의 모습이었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인간의 허물을 벗은 사내는 그 자리에서 커다란 버섯이 되었다.
용이 그 버섯을 한 입에 먹어 치운 것은 물론이다.



*. 용버섯(Drache-Pilz, Cordyceps Dragonus, 龍芝)
사람을 숙주로 하는 버섯의 한 종류.
인체내에서 성장하는 동안에는 뇌를 자극하여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도록 만들기도 하며.
나아가 뇌를 잠식함에 따라 기억상실과 같은 치매성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성장을 마친 용버섯은 용이 즐겨 먹으며, 그 배설물을 통해 포자를 번식시킨다.

*. 용 (Dragon, 龍)
 용은 자체로서 대단히 강력한 생물은 아니며, 머리 또한 별로 좋지 못하다.
따라서 새로운 병기를 갖춘 조직화된 군대에게 용이 죽게 된 것 또한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왕은 용버섯을 통한 드라군 육성을 위해 용을 귀하게 여겼으며,
용이 종종 마을에 내려와 사람을 해치는 등의 행위 또한 방관하였다.
용을 죽인 것은 적국의 총기병(銃騎兵)으로, 이후 드라군이란 명칭은 총기병을 달리 부르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Paris Match - b5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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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Posted by 검은튤립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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